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문단 편집) === 초기 시절 === 카라바조는 1571년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그의 성이 카라바조가 된 것은 양친이 베르가메 지방의 소도시였던 카라바조 출신이었기 때문.[* 당시 카라바조는 스페인의 영토에 속해 있었다.] 그의 부친의 직업은 건축가 또는 석공으로 알려져 있다. 그와 그의 가족은 얼마간 밀라노에서 살았으나 1576년 [[페스트]]가 밀라노를 덮치자 고향인 카라바조로 피신했다. 하지만 이때 카라바조의 부친과 형제 중 일부는 결국 페스트로 세상을 떠났다. 페스트가 가라앉은 후 밀라노로 돌아온 카라바조는 미술에 대한 재능을 인정받아 13살이었던 1584년에 밀라노의 화가 시모네 페테르차노의 공방에 견습생으로 들어간다. 페테르차노의 공방에는 1588년까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는데 이후 로마로 이주하는 1592년까지 4년간의 행적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카라바조의 회화 실력은 로마에서 점점 유명해졌으며 1600년경부터 본격적으로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로마의 많은 유력자들이 그의 후원자를 자처했고 거액의 그림 주문을 받았다. 특히 로마의 고위 성직자들이 카라바조를 매우 아꼈는데, 당시 종교개혁으로 인한 세력 약화로 고전하고 있던 로마 카톨릭에서는 그의 인상적인 그림이 카톨릭의 세력 회복에 큰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 당시만 해도 유럽은 문맹률이 매우 높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그림이나 조각 등이 대중에게 주는 영향력은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게다가 종교개혁으로 등장한 신교 세력들은 화려한 그림이나 음악을 불필요한 사치이자 일종의 우상숭배로 간주하면서 배척했는데, 이런 점을 역이용해서 로마의 성직자들은 카라바조의 사실적이고 강렬한 시각효과를 주는 그림들이 카톨릭에 대한 신앙심을 되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